18세기 해부학자였던 오노레 프라고나르(Honoré Fragonard, 1732-1799)는 프랑스혁명 시기에 자신이 추구한 시연적(demonstrative) 해부학을 혁명정부의 공식 지원을받는 과학 학문의 반열에 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해부학 표본이과학 교육을 위한 정밀한 도구로서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의 발달, 더 나아가프랑스 사회의 갱생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국립해부박물관 건립계획은 자코뱅 정부에 의해 거부되었고, 그의 사례는 과학자들과 혁명정부의 상호작용이 실패한 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그 실패의 이유는 우선 프라고나르가추구한 이상적 과학과 혁명기에 지지받은 실제 과학 사이에 존재한 미묘한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과학과 예술, 이성과 상상력,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었던 프라고나르의 해부학은 혁명기에 가속화된 지식 체계의 변화 안에서학문적 자리를 확보할 수 없었다. 이 논문은 프라고나르가 추구한 과학 지식과 혁명정부의 전망과의 괴리, 특히 변화하는 지식 체계 안에서의 그의 과학 지식의 위치를 살펴봄으로써 프라고나르의 과학의 특성과 과학 지식에 대한 혁명 시대의태도를 동시에 이해하고 정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