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의 시에서 언어는 주체가 세계를 인식함과 동시에 그것을 드러내는 중요한 매체로 인식된다. 중기까지 물질주의 비판을 주제로 하는 시에서, ‘세계’는 주체가 살아가는 현실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에 비해 후기 시에서 ‘세계’는 주체가 대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각 지평이다. 세계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언어 역시 변화한다. 물질주의 비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언어가 특정한 대상을 대신하는 은유적 언어라면, 열린 세계에 대응하는 언어는 세계의 인접성을 표현할 수 있는 환유적 언어이다. 본고는 오규원의 시론이 은유적 사고에서 환유적 사고로 전환되는 과정을 인지시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비유’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br>『현대시작법』은 실제 창작지도 경험에 바탕한 창작 이론서이다. 이 책에서 비유는 우선 시를 구성하는 수사학적 테크닉으로 설명된다. 오규원은 비유를 ‘의미의 비유’와 ‘말의 비유’로 나눈다. 이때 구분의 기준은 비유의 결과 원래의 단어에 의미론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 여부에 있다. 그리고 이 의미론적 효과는 시적인 효과를 넘어서 인간 삶의 국면에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생각은 문학에서의 비유가 인간의 실제 삶에서의 비유에 바탕하고 있다는 인지시학적 관점과 유사하다.
<br>오규원은 르네 웰렉이나 에이브럼스, 필립 휠라이트 등 신비평적인 이론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분석의 과정에서는 비유의 종류를 지정하는 것보다 비유가 성립되는 사상 mapping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비유의 성패를 근원 영역과 목표 영역 사이에 사상이 제대로 성립하는가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유를 사상이라는 의식의 활동으로 보는 인지시학적 관점과 일치한다.
<br>그의 후기 시와 시론을 집약하는 ‘환유’에 대한 개념 역시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말한 환유/제유의 구분이 시적인 테크닉이라면, 유사성/인접성은 단어 사이의 결합 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지시학에서의 은유/환유의 관계에 대응한다. 『현대시작법』에는 이처럼 환유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
<br>이같은 개념의 혼동은 『현대시작법』 이후의 시론에서 선명하게 정리된다. 오규원은 스스로 『현대시작법』에서 비유를 설명하는 근거였던 르네 웰렉과 오스틴 워렌의 이론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연구가 신비평적인 분석과 구별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후 환유는 인접성에 근거를 둔 발화의 구성 방식이자 세계관으로서 후기 시론의 핵심적인 주제가 된다.
<br>오규원은 신비평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실제 분석 과정에서 신비평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해 가는데, 그 과정은 비유를 기교가 아닌 인간의 의식 활동으로 보는 인지시학적인 관점과 상당히 유사하다. 후기 시론에서 환유는 세계관인 동시에 그것을 드러내는 언어적 체계이다. 대상을 인접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인지시학적 관점은 이러한 시론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