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염상섭 장편소설 광분의 창작 의도를 중심으로 작품이 세계를 어떻게 그려내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이면에 숨겨진 것을 보라’고 한 작자의 경고에 주목할 때, ‘무엇’을 보여주는가에 못지않게 ‘어떻게’ 보여주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또한 『광분』이 영화 「사바세계의 사형수」에서 서사의 기본적 틀을 가져왔음을 고려할 때, 그 틀을 어떻게 활용하고 극복하는가를 따지는 작업도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이 글에서는 무언가를 숨기고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를 점검한다. 2장에서는 『광분』의 갈등 관계를 살펴본다. 경옥과 숙정의 대결에서 부르주아의 과시적 욕망을 추출하고 대결에서 승리하는 경옥을 통해 모던걸의 생활을 보여주겠다고 한 작자의 의도를 확인한다. 또한 무대 뒤에서 경옥의 타락을 관찰하는 진태의 시선을 통해 이면을 보라고 한 작자의 경고를 살핀다. 3장에서는 작중인물들이 속고 속이기를 반복하는 서사 전개를 검토한다. 『광분』에서는 여러 인물이 상대방의 눈을 속이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아채려고 분주히 움직이는데, 여기에 더하여 간혹 발생하는 엿보기는 서사 전개를 전환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4장에서는 추리소설의 일반적 공식을 역전한 구도로 이루어진 작품 후반부를 분석한다.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되는 상황에서 경찰 수사는 수수께끼 풀이가 아니라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과 치부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된다. 또한 『광분』의 결말은 독자를 위안하는 추리소설과는 달리 독자를 새로운 문제와 대면하게 한다. 독자에게 사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따지라는 요청에서 서사의 이면에 배치된 작가 의도를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