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960년대 중반 문단이 저조한 원인을 진단하고 있는 김수영의 「히프레스 문학론」을 대상으로, 그 제목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앨런 테이트의 글과 비교하여 고찰하였다. 이 글은 미국 뉴크리티시즘 비평가인 앨런 테이트의 「The Man of Letters in the Modern World」를 직간접으로 인용하면서 중심 내용을 차용하여 쓰고 있다. 제목의 ‘히프레스’는 테이트의 텍스트에서 등장하는 블레이크의 시 구절인 ‘하프레스’를 연상시키며, 그 뜻은 ‘불행한’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해방이후 문학적 자양분의 공급처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뀐 상황에서 세대적인 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새로운 공급처의 이질적 성격이 우리 문단의 빈곤과 경색을 가져온 점에서 김수영은 문학계의 불행을 말한다. 그리고 작가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굴종과 노예의 습성이 자유로운 문학을 전개하지 못하는 내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현 문단의 불행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렇게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 문학계의 ‘불행한’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br>김수영이 이러한 진단을 내리는 데 사용한 자유의 언어와 노예의 언어, 언어의 문화를 주관하는 작가의 역할과 민주주의의 악용을 비판할 수 있는 작가의 용기, 사랑의 영원한 시간 안에서의 심금의 교류라는 표현들은 앨런 테이트의 글에서 차용해 온 것이다. 이러한 주제와 표현들은 김수영의 일관된 문학적 신념과도 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평론이 발표된 『사상계』와 앨런 테이트의 글이 발표된 ‘세계문학자유회의’와의 관계는 이 언표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을 당대의 냉전 이데올로기라는 담론체계 속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1950년대 초 미국과 유럽 간 자유 진영의 통합이라는 의도 하에 발표된 테이트의 원문은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차원의 교류와 그에 관한 작가의 임무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수영의 글은 그 종교성을 탈각시키며 탈식민지적인 한국의 상황으로 자유와 사랑의 의미를 전유한다. 이 평문은 이 글이 발표된 『사상계』라는 매체를 고려해 볼 때 우리 내부에서,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세계 질서의 냉전 체제 속에서, 그리고 사회와 작가 간의 관계에서와 같은 다양한 층위에서 작가의 역할과 문학의 목적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