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은 후기 시에서 세계를 언어로써 구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는 대상을 실제와 똑같이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 너머에 있는 대상의 존재 방식까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대상에 대한 묘사와 아울러 대상의 관찰을 통해 얻어진 시인의 해석을 함께 실어놓고 있다. 이러한 창작 방법은 세잔의 회화와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br>세잔은 인상파 화가들이 자연을 재현하기 위해 그것을 세밀하게 모사했던 것과는 달리, 관찰을 통해 파악된 자연의 구조를 그리고자 했다.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해석한 바대로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대상에 대한 묘사와 해석을 병행하는 오규원의 후기 시들은 대상을 구현하려 했던 세잔의 회화적 방법론과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오규원은 산문에서 세잔 회화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양자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근거이다.
<br>세잔이 데생과 색채를 이용하여 세계의 ‘깊이’를 공간적 동시성으로 구현했다면, 오규원은 시간적 순차성을 이용하여 언어로써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오규원은 하나의 시 안에 서로 다른 시점에서 관찰된 내용을 배치함으로써 다시점을 활용하고 고전적인 원근법을 벗어난다. 이것은 세잔이 정물화에서 대상을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하고 어긋나는 시점들을 동시에 표현했던 것과 유사하다. 두 사람은 이같은 방법을 통해 세계에 대한 해석을 구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오규원의 후기 시에서 비어있는 공간은 제재와 동등하게 전체를 구성하는 ‘긍정적 부정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허공’은 사물의 흔적을 품음으로써 더욱 두터워진다. 이는 세잔의 회화에서 배경이 제재와 동일하게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는 것과 유사하다. 양자에서 모두, 비어있는 공간은 부재가 아니라 흔적으로 두터워진 세계의 ‘깊이’를 표현하는 것이다.
<br>세잔이 3차원의 입체감을 2차원의 평면에 재현하고자 했다면, 오규원은 언어로써 2차원의 평면에 고정되는 것들에 양감을 불어넣어 3차원적 입체성을 살려내고자 했다. 방향은 정반대이지만, 두 사람은 세계의 내적 연관성을 드러내고 그 ‘깊이’를 구현하고자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