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사회주의 진영의 ‘동방’과 ‘서방’에서 혼란이 발생하였다. 1956년 8월 북한에서는 8월 사건이 발생하였고, 중소는사건 해결을 위하여 북한의 8월 사건에 개입하였다. 중공은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북한이 사회주의 진영을 이탈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하였고, 중소에 대한 지지도 확고하였다. 중공은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고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통하여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1956년 10-11월, 동유럽의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위기와 혼란이 고조되었다. 폴란드의 고물카 정권은 소련과의 긴장된 관계를 해결하면서 국내의 혼란을 안정시켰다. 반면에 헝가리의 임레나지 정권은 소련과의 악화된 관계를 해결하지 못하였고, 결국 헝가리 사태는 소련의 군사개입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공은 동유럽에서 발생했던 폴란드와 헝가리 사건에도 관여하였다. 중공은 사회주의 노선에 충실했던 폴란드에대해서는 대화와 타협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였고, 사회주의 노선을 이탈하고자 했던 헝가리에 대해서는 무력을 통한 해결 방식을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