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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Field | Value | Langu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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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ontributor.author | 김종식 | - |
dc.date.issued | 2020-03 | - |
dc.identifier.issn | 1225-1615 | - |
dc.identifier.uri | https://aurora.ajou.ac.kr/handle/2018.oak/35181 | - |
dc.description.abstract | 식민지 조선에 대한 지배정책과 제도의 연구는 일본의 식민지 조선 지배를 단선적이고 단일한 대오를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우려를 낳는다. 식민지 조선에 대한 정치과정 연구는 식민지 조선을 복선적이고,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본 논문은 1910년대 일본정치의 번벌과 정당세력의 대립구도 속에서 번벌세력 중심의 식민지조선 지배와 결을 달리하는 정우회(정당세력)와 그 세력의 중심에 있는 하라 다카시의 식민지 조선지배 관여의 정치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1910년 한국병합을 진행하면서 번벌 내 육군은 조선의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정우회의 정권획득과 일본내의 헌정옹호운동으로 조선총독의 문무관병용 논의가 전개되면서 번벌과 육군의 식민지 조선지배도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정우회와 정당세력의 식민지 조선 개입의 길도 열리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쌀소동 등으로 촉발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정우회를 비롯한 정당세력의 정치력을 확장하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조선총독의 문무관 병용을 실현하면서 내각총리대신 하라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정당세력의 식민지조선에 대한 정책은 식민지조선에 대한 정치적 방면에서의 내지연장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관료 임명권을 통해 전개되었다. 조선지배의 중심세력이 군인에서 관료로 변화하면서, 일본 정치와 식민지 조선의 결합이 높아지게 되었다. | - |
dc.language.iso | Kor | - |
dc.publisher | 역사학회 | - |
dc.title | 3·1운동을 전후한 1910년대 식민지조선을 둘러싼 일본의 정치과정 연구 -입헌 정우회와 하라 다카시(原敬)를 중심으로- | - |
dc.title.alternative | A Study of the Japanese Political Process over Colonial Joseon in the 1910s before and after the 3·1 Movement | - |
dc.type | Article | - |
dc.citation.endPage | 118 | - |
dc.citation.number | 245 | - |
dc.citation.startPage | 91 | - |
dc.citation.title | 역사학보 | - |
dc.identifier.bibliographicCitation | 역사학보 No.245, pp.91-118 | - |
dc.subject.keyword | 하라 다카시(原敬) | - |
dc.subject.keyword | 식민지 조선 | - |
dc.subject.keyword | 번벌(藩閥) | - |
dc.subject.keyword | 정우회 | - |
dc.subject.keyword | 3·1운동 | - |
dc.subject.keyword | Hara takasi | - |
dc.subject.keyword | Colonial Chosun | - |
dc.subject.keyword | Hanbatu(藩閥:the old oligarchic group) | - |
dc.subject.keyword | Seiyukai | - |
dc.subject.keyword |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 - |
dc.type.other | Articl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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