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연구에서 나혜석의 존재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염상섭과 나혜석의 관계에 관한 기존의 논의는 엇갈리는 양상을 보인다. 나혜석을 향한 첫사랑이 좌절된 경험으로 인해 염상섭에게 여성혐오의 시각이 생겼고, 이후 여러 작품에서 신여성을 향한 부정적 시선으로 이어졌다는 통설과 염상섭에게 나혜석은 그리움의 대상이었다는 반론이 있다. 이에 본고는 염상섭의 단편 「E부인」이 염상섭과 나혜석의 관계에 관한 견해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라는 가정 아래 작품 분석은 물론 염상섭과 나혜석이 남긴 글과 주변의 회고 등을 검토하였다.
<br>우선 「추도」와의 유사성을 근거로 「E부인」이 나혜석을 모델로 하였다는 기존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재확인하고, 1920년대 나혜석이 안동현에서 서울로 올라와 염상섭과 종종 만났던 일, 1927년 나혜석이 염상섭에게 결혼 소개를 주선했던 일 등 실제 사실을 소재로 활용하였음을 추가로 확인하였다.
<br>다음으로 「E부인」의 소설적 허구화 양상을 살폈다. 실제의 인물과 사건을 소설화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변형이 동반될 수밖에 없음에 착안한 것으로, 실제와는 달리 작가가 자신의 첫사랑을 아름다운 로맨스로 미화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즉 1920년대 후반까지 염상섭에게 나혜석은 그리움과 미련의 대상이었으며, 이러한 염상섭과 나혜석의 관계는 염상섭의 소설에 나타난 신여성 인물을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추후 추가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br>한편 「E부인」은 염상섭이 장편소설 작가로 성공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얻어 결혼식을 올릴 무렵 쓴 작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렇게 볼 때 「E부인」에서는 유명 작가로 생활의 여유를 찾은 안도감과 대중 독자를 상대로 하여 작품 수준을 낮춘다는 자괴감 등 예술과 생활에 관한 당시 염상섭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E부인」은 결혼을 앞둔 염상섭이 첫사랑을 향한 감정을 정리하며 쓴 작품으로 읽을 수 있으며, 1930년 나혜석이 이혼한 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녀와 거리를 둔 것이 「추도」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E부인」은 작가의 개인사적 이면과 예술에 관한 당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염상섭과 나혜석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