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은 19세기 중반부터 그 영광을 누려왔으며, 19세기의 예술가를 평가하는 확고한 기준을 제시했다. 입체주의와 추상미술로 이어지는 계보 속에서 절대적으로 굳어진 이 기준에 의해, 현대적인 예술가 군에 속하지 못한 작가들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채 잊혀지게 되었다. 1852년 파리에서 출생한 앙리 제르벡스 역시 그러한 예술가들 중 하나로, 초기에는 신화 소재의 그림을 그렸으나 곧 풍속화가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제3 공화정 공식 예술가로 인정을 받은 제르벡스는 부르주아지들이 선호한 초상화가이기도 했다. 제르벡스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닌 당대의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심리적인 통찰력을 지닌 예술가였다고 할 수 있다. 제르벡스는 장르와 사조를 불문하고, 동시대의 다른 예술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예술 세계에 반영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벨 에포크 시기가 지나고 현대 미술, 보다 구체적으로 추상 미술이 대세를 이루게 되면서, 제르벡스의 자연주의적 작품들은 충실한 모사/묘사의 예술 정도로 여겨지게 되었다. 인상주의와 그 계승자들에게 순차적으로 영광의 월계관이 수여되는 동안, 동시대에 존재했던 다른 양식들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관심에 만족하거나 왜곡된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 중에서도 자연주의 회화는 반反인상주의적으로 여겨지거나, 문학에서의 자연주의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등 독자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였고, 자연이라는 단어의 추상성, 포괄성 때문에 시대적인 의의를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였다. 개념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벨 에포크의 세련되고 과시적인 문화 속에서 자연주의 풍속화는 사회적 초상으로서 존재론적 가치를 지닌다. 동시에,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존재하는 반어적인 거리를 깨닫게 해줌으로써, 근대성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게 하는 기능 역시 충실하게 수행하였다.